차윤석 | 2025년11월 | 304쪽 | 22000원
■ 책 소개
고대와 근대를 가로질러 건축이론의 뼈대를 다시 세우다
고대 로마의 『건축십서』에서 르네상스의 알베르티, 팔라디오에 이르는 건축이론의 핵심 장면들을 한데 모아, 건축이라는 행위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떻게 현재의 언어를 갖게 되었는지 차분히 짚어 나가는 안내서다.
구조·비례·장식 같은 익숙한 키워드만 나열하는 대신, 각 사상가가 마주했던 시대적 조건과 사회적 요구, 기술의 한계를 함께 보여 주면서 건축이론이 현실의 문제에 대한 응답이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원전을 직접 번역·발췌한 문장과 해설을 나란히 배치해, 고전 텍스트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오늘의 설계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독자가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구성이 돋보인다.
자연과 풍경, 입지와 공공성을 둘러싼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건물이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한 사회의 관계와 가치관을 응축한 장치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설계실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건축학도와, 이론 공부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고 싶은 실무자에게 건축이론이라는 느린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신뢰할 만한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 저자 차윤석
차윤석은 건축이론연구가다. 건축과 도시의 질서와 인간의 삶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 이론과 실천을 넘나들며 바라보아왔다. 부산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해 베를린공과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과 도시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이후 약 7년 동안 독일에서 단독주택부터 대형 쇼핑몰, 아부다비 메트로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과 도시 스케일의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독일 건축사를 취득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동아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다양한 공공건축 작업에 참여했고 인문무크지 ‘아크’의 고정 필자로 활동하면서 건축과 도시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개진해왔다. 더 나은 도시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건축을 위해 여전히 개선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한국 건축과 도시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공공성의 문제를 꾸준히 사유하고 있으며 현재 건축이론연구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제1장 비트루비우스와 건축십서
1.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에 관하여
2. 건축십서(De Architectura)에 관하여
3. 건축십서 서문 해설
4. 건축십서 본문 해설
5.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이론
5.1. 건축의 기원과 발전과정
5.2. 건축가의 자질
5.3. 건축가에게 필요한 교육
5.4. 건축의 3요소
5.5. 건축의 미학적 기본 개념
5.6. 비트루비우스의 비례이론
6. 건축십서를...
제2장 중세 건축이론의 파편화
1.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건축물(Περ? Κτισμ?των)
2. 어원학 (Etymologiae)
3. 생드니 수도원 봉헌에 관한 다른 작은 책
4. 13세기 스콜라철학과 학문적 전제조건
5. 스케치북 (Album de dessins et croquis)
6. 15~16세기 독일의 고딕양식 건설기술지침서
7. 중세는...
제3장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와 건축론
1.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에 관하여
2. 건축론(De Re Aedificatoria)에 관하여
3. 건축론(De Re Aedificatoria) 서문 해설
3.1. 건축의 필요성에 관하여
3.2. 건축가에 관하여
3.3. 건축의 기원에 관하여
4. 건축론(De Re Aedificatoria) 본문 해설
5. 알베르티의 건축이론
5.1. 건축에 대한 관점의 전환
5.2. 건축의 요소
5.3. 건축디자인에 대한 정의
6. 알베르티의 이론과 미학
6.1. 아름다움 (美, Pulchritudo)과 장식(Ornamenta)
6.2. 수(numerus)
6.3. 관계(finitio)
6.4. 배치(collocatio)
6.5. 미학의 확장
7. 건축론은...
제4장 1400~1500년대의 건축이론
1. 건축론 (Trattato d’architettura)
2. 폴리필루스의 꿈 (Hypnerotomachia Poliphili)
3. 신성한 비례 (De Divina Proportione)
4. 건축에 관한 7권의 책 (I sette libri dell’architettura)
5. 건축의 5대 주범양식에 대한 규칙
6. 다시 시작하는 것은....
제5장 팔라디오와 건축사서
1. 주변 인물들이 팔라디오에게 미친 영향에 관하여
1.1. 지안 조르지오 트리시노 (Gian Giorgio Trissino)
1.2. 알비제 코르나로(Alvise Cornaro / Luigi Cornaro)
1.3. 다니엘레 바르바로 (Daniele Barbaro)
2. 건축사서(I quattro libri dell’architettura)와 팔라디오의 건축이론
2.1. 건축사서 제1권
2.2. 건축사서 제2권
2.3. 건축사서 제3권
2.4. 건축사서 제4권
3. 건축사서는...
■ 국내서 프리뷰
건축이론이라는 느린 사유로 들어가는 입구
눈앞의 도면과 3D 모델링 화면에 온 신경이 쏠려 있을 때 건축이론이라는 말은 종종 뜬구름처럼 느껴진다. 당장 마감해야 할 것은 설계안이고, 클라이언트가 묻는 것은 구조와 예산이지 비트루비우스나 알베르티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기술과 프로그램은 빠르게 진화하는데 정작 생각의 방향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은 막막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오래된 건축이론의 문장들이 다시 불려 나온다. 고전 텍스트를 펼쳐 본다는 것은 단순한 교양 차원이 아니라, 지금의 설계적 판단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행위에 가깝다.
"고전 건축이론의 출발점" 비트루비우스라는 문턱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는 서양 건축이론의 첫 문턱에 서 있는 이름이다.
"『건축십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에 관한 문헌이며, 건축이론의 출발점으로 간주해도 큰 무리가 없다. 물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순수하게 건축이론과 관련된 부분은 채 3분의 1이 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과 구축술, 도시계획, 시계 제작, 공성무기 제작 등 많은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고대의 건축가가 상대해야 했던 세계의 범위를 한눈에 보여준다. 구조와 비례, 장식만이 아니라 도시와 전쟁, 계측과 기술 전체가 하나의 시야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늘날 설계 도면과 시공 디테일, 도시계획과 환경 설계가 각기 다른 분야로 분화되어 있지만, 출발점에서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시각 속에 놓여 있었다.
"이제부터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건축, 특히 이론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비트루비우스의 설명을 살펴보자. 앞서 잠깐 언급하긴 하였으나, ‘건축십서’라는 소리만 들으면 조건반사 격으로 튀어나오는 구조(Firmitas), 기능(Utilitas), 미(Venustas)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니, 다음에 언급하는 부분은 반드시 제대로 살펴보고 흐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흔히 암기처럼 되뇌는 구조, 기능, 미라는 세 단어는 사실 훨씬 더 큰 이야기의 압축이다. 그 이면에는 건축이 세워지는 자리, 그 시대의 기술 수준, 도시의 삶의 방식이 얽혀 있다.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현실과 이론을 함께 붙들려는 고대의 시도가 응축된 공식에 가깝다.
이론과 실천을 잇는 다리
비트루비우스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머릿속 사유와 손과 몸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따로 떼어 생각하지 말라는 요청이다.
"결국 비트루비우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론과 실천의 조화, 즉, 정신적 작업을 기반으로 한 실천적 작업의 일관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론과 실천은 서로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개념이다."
이 말은 오늘의 설계실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스튜디오에서 이론 수업과 설계 스케치가 따로 놀고, 완공된 건물을 설명할 언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그 틈을 메우는 것이 바로 이 연결의 감각이다. 계산과 규범, 미적 판단이 각기 다른 파일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 폴더 안에서 상호 참조되는 구조가 될 때, 건축은 비로소 설득력을 갖기 시작한다. 이론은 현장을 조종하는 지침서가 아니라, 현장 위에서 반복해 시험되고 다시 수정되는 느린 언어다.
알베르티, 공백 위에 세운 새로운 언어
중세의 긴 침묵을 지나면, 알베르티가 등장해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웠던 건축이론의 영역을 다시 채우기 시작한다.
"알베르티는 거의 1400여 년 동안 불모지였던 건축이론을 새롭게 정립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건축십서』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이론서는 없었으며, 이조차도 너무 포괄적이고 애매했다. 필자는 내용을 떠나서 이러한 시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만약 알베르티가 아니었으면, 건축이론은 거의 100년 이상의 침체기를 더 겪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알베르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비례 규칙을 정교하게 정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건축과 건축가의 역할을 사회 전체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위치시키려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서문에서 알베르티는 건축과 건축가의 역할을 ‘사회적 유대’라는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봉사로 규정한다. 이런 논리를 통해 알베르티는 건축이 모든 ars(예술, 기술) 중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정당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축을 사회적 유대의 장치로 보는 관점은 오늘의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누군가는 일시적으로 머무르고, 누군가는 평생 살아갈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국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개별 건물의 규모와 상관없이,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동선과 시선, 만남과 단절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새로 짠다. 알베르티에게 건축은 미학적 오브제를 넘어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장치였고, 그렇기에 다른 예술과 기술들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분야로 이해되었다.
제4권에서 반복해서 강조되는 문장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제4권 1장에서는 건물이란 사람들의 필요성과 편의성,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서문의 주장을 반복한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으니 공공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공공성은 행정에서 사용하는 형식적인 단어가 아니다. 건물을 설계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타인들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요구, 즉 공간을 둘러싼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고민하라는 요청에 가깝다.
기둥에서 풍경으로, 아름다움의 확장
르네상스를 지나며 건축이론은 기둥과 신전의 규범을 넘어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인다.
"이는 단순히 기둥과 신전의 분리라는 문제를 넘어서, 건축이론에 새로운 흐름을 도입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건축 미학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새로운 흐름 속에서 아름다움의 개념은 더 이상 장식과 비례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아름다움의 개념은 다소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건물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장식이 아닌 자연과 풍경을 건축적 장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기존의 아름다움보다 확대된 개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이 구절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입지가 건물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 주변 풍경을 건축적 장식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은, 배경을 꾸미는 정도를 넘어 근본적인 설계 태도를 요구한다. 건물이 땅 위에 끼어드는 이물질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지형과 시선, 빛의 방향을 끌어안아 함께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이때 입지는 단순한 조건이 아니라, 디자인을 결정하는 주체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다. 오늘날 장소성이라는 말로 이야기되는 감각이, 이미 이 시기 이론의 언어 속에 싹을 틔우고 있었던 셈이다.
팔라디오와 건축이론의 대중화
팔라디오는 또 다른 방식으로 건축이론의 지평을 넓힌다.
"『건축사서』를 통해 팔라디오는 고대 그리스, 로마건축에 대한 체계를 알리고, 이후에 나타날 건축의 규범을 제시하려 했다. 따라서 『건축사서』에서 그는 최대한 쉽게 건축에 관해 설명하고 체계를 강조했으며, 삽화를 통해 이해를 돕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건축과 건축이론의 대중화에 기여한 부분은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난해한 이론을 쌓는 일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따라올 수 있는 언어와 도식을 만드는 일이다. 이론이 설계 스튜디오와 도면, 교육 현장 속으로 스며들려면, 일상적인 언어와 그림으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 팔라디오가 고대 건축을 체계로 정리하고 삽화를 덧붙여 설명하려 한 노력은, 건축이론을 소수의 특권적인 지식이 아니라 공유 가능한 도구로 만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오늘의 설계실로 되돌아오는 질문들
고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건축이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몇 가지 질문으로 모이게 된다. 건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건축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건축은 어떤 세계관을 전제로 삼고 있는가. 비트루비우스가 구조와 기능, 미의 조화를 이야기할 때, 알베르티가 사회적 유대와 공공성을 강조할 때, 팔라디오가 고전을 쉽게 풀어 규범을 제시할 때,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이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늘의 설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어쩌면 이 질문들과의 연결이 느슨해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결과를 설명할 언어가 빈약하다면 결국 선택과 판단의 근거가 희미해진다. 오래된 건축이론의 문장을 곁에 두고 설계를 생각할 때, 도면 위의 선 하나, 창 하나, 계단 한 칸이 어떤 철학과 미학, 어떤 사회적 상상력과 맞닿아 있는지 조금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감각이, 막혀 있던 시야를 다시 열어 주는 첫 번째 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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